‘자동차진단평가사’ 제도 혼란스럽다
중고차 가격 공개 의무화가 관련 업계에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2월 “자동차진단평가사”제도 도입을 골자로 함진규 의원이 대표발의한 자동차관리법 일부 개정법률 안이 일부 수정을 거쳐 2015년 1월 6일 공포되어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에서는 지난 8월 3일 세부적인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입법예고 해 연일 관련 업계를 달구고 있다.
공포된 자동차관리법과 이번 8월에 입법예고 된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의 골자는 매매업자가 중고차 판매 시 소비자가 원할 경우 일정 자격을 갖춘 자에게 “중고자동차 가격 산정서”를 발급받아 소비자에게 교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매업계에서는 2014년 함진규 의원의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안 입법 시 부터 강력히 반대해왔던 사안이다. 이유는 분명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상품의 가격을 특정 자격집단에서 산정토록 하고 이러한 자격을 법률을 통해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이냐는 거다. 근본적으로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도 시장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 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령 매매업자가 1,000만원에 내놓은 중고자동차를 소비자가 구매하고자 할 시, 제도에 따라 중고차 가격 산정을 받아보고 싶다는 소비자의 요구에 의거 가격 산정을 의뢰했다고 가정해 보자.
가격 산정자가 산정한 가격이 900만원 이라면 소비자는 1,000만원에 내놓은 그 자동차를 구매할 것인가? 또는 산정자에 의해 산정된 가격이 1,100만원 이라면 매매업자는 해당 차량을 원래 내놓은 가격인 1,000만원에 판매할 것인가? 매매업자가 책정하여 제시한 가격보다 평가자가 조사․산정한 가격이 낮을 경우 소비자는 구매하지 않을 가능성 높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소비자는 구매의사를 밝힐 것이나 매매업자는 평가자의 산정 가격만큼 가격을 올려 다른 소비자에게 팔려고 할 것이다.
매매업자가 책정한 상품 가격과 산정자의 산정가격이 상이하면 결국 혼란만 가중된다. 또한, 산정자에게 가격 산정을 의뢰하고 결과를 받았으나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을 경우 가격 산정 의뢰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도 실질적으로 작지 않은 문제다. 이러한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 매매업자는 판매할 차량을 매입할 시부터 평가자에게 해당 차량에 대한 시장에서의 판매가를 문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전에 그러한 문의 없이 판매할 차량을 매입하고 상품화를 거쳐 판매가를 책정할 경우 평가자의 산정 가격과 상이하다면 판매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곧 중고차 매매시장이 “가격 조사․산정자”에게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시장경제체제에서 특정집단이 가격 산정 권한을 통해 시장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중고자동차 가격 조사/산정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여건 현황, 당장 2016년부터 년간 300만대에 달하는 중고차 거래량을 소화할 가격 조사/산정자 양성 현황, 가격 산정을 위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근거가 될 데이터는 충분히 축적되어 있는가 등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할 기본적인 전제조건과 현실을 보면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든다. 하물며, 현재 서울자동차매매조합은 물론 여러 사업자가 중고자동차에 대한 평균적인 시세를 조사하여 발행하는 일명 “시세표”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책자를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일부 사업자는 온라인을 통해 중고자동차에 대한 시세를 찾아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미,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세가 아닌 일부 자격자에 의한 확정적 의미의 산정 가격을 거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중고차 가격 공개 의무화는 듣기 좋은 허울뿐인 제도로 시장과 정부의 신뢰도만 하락 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서울자동차매매조합 박종길 조합장은 “ 지난 2014년에 법령이 발의 되었을 때도 시장경제원리를 무시한 근본 없는 제도이고, 현실적으로 실효성을 담보하기는커녕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중고자동차 가격 조사/산정자’에게 제도적으로 시장의 지배권을 보장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라며 반대의견을 피력했음에도 해당 제도를 밀어붙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특정업계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설자격증인 ‘자동차진단평가사’를 말만 바꿔 공인화 해 시장의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악법이다 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시장의 혼란을 염려했다.
손진석 기자